이후의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 68x138cm 장지에 채색 2024
The Story After 68x138cm Color on Hanji 2024

지나온 시간만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성한 곳 하나 없이 온 몸이 쩍쩍 갈라져 있는 채로 태어난 곳, 그곳에 주욱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찾거나 들여다보지 않아도 자리 잡은 곳에서 굵은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렸다. 언젠가 찾는다하여도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 그 기억은 존재가 희미하나, 깊게 내린 뿌리 덕에 나를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기억 중 하나다. 어떤 쪽으로도 강렬하지는 않으나 잔잔히 그곳에 존재한다.
 
나는 오늘 그 기억에 다녀왔다. 거친 나뭇결이 내 털을 엉키고, 여러 갈래의 길에 방향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쾌하지 않아서 계속 나아갔다. 

드문드문 끊어진 기억 사이에 새로운 오늘, 새싹을 심었다. 새싹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울 것이다. 나의 오랜 기억을 양분 삼아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