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Note
~ing

한 그루
이재은 작가의 작업은 과거에 남아 있는, 잊히지 않는 기억과 감정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강박처럼 내면을 지배해온 기억들을, 작가는 자연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본인의 일부로서 수용하고자 한다. 작가에게 ‘나무’는 단순한 대상이 아닌 기억을 상징하며, 동시에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단위로서 기능한다. 기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무들과의 교감이 시작되었고, 그 안에서 ‘한 그루’라는 이름의 생명체가 탄생한다.
‘한 그루’는 과거의 기억이 생명력을 얻어 작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작가는 ‘한 그루’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마주하게 되며, 현재를 비추는 과거의 눈동자를 발견한다. 맑은 눈동자 속, 작가는 그 작고도 선명한 빛을 통해 자신의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내면의 빛을 발견한다. 이 빛은 찬란한 깨달음으로 이어져, 어둠을 가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로 나타나 성장하는 자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작품 속 밤하늘은 무수한 터치들의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기억을 되새기고 마주하는 행위가 반복적이고 고통스러운 ‘뒤로 걷는 시간’임을 상징하며, 수없이 많은 기억과 마주한 끝에 과거의 눈동자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과정 또한 시각화한다. 이러한 터치들의 누적은 전통 한국화 채색기법의 물성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동시에, 감정과 시간의 층위를 화면 위에 응축하여 내면의 서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빛을 찾은 존재들은 하늘 위에서 별이 되고, 그 별들은 다시 나무 한 그루의 형상으로 모여 서로를 지탱하며 공존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이재은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서사를 담은 작업을 통해, 두려움 속에서도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작은 용기의 불씨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빛들이 모여 함께 숲을 이루어가리라는 희망을 담아낸다.
-2024

한 그루
과거를 되새기는 나의 강박 습관을, 기억을 매개체로 표상(表象)하여 긍정적인 변화 과정으로 시각화하였으며 이를 서사화(敍事化)하고 있다. 서사화란 이야기나 사건 따위를 변화 과정에 따라 재조직하여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억의 서사화 방식이란 내가 본인의 이야기를 서사로 인식하고 이미지로 서술하는 작업 방식이다.
서사로 풀이되는 나의 강박은 이전의 특정 기억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미성숙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자기 고백의 일환이었으나, 기억의 재현으로 인해 당시 불안정한 감정 또한 재생되면서 내면의 불안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강박을 본인을 이루는 하나의 특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서사화로 나타내었다. 나의 회상은 모든 것에서 동 떨어져 있는 숲의 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을 회상하고 이미지를 계속 반복하여 만들어진 숲은 마치 보안용 감시카메라(CCTV)와 같다. 보안용 감시카메라(CCTV)는 24시간 특정 장소의 모습을 촬영, 녹화하는 카메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 같은 일방적인 숲의 구도가 내가 생각하는 회상의 이미지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나 늘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 본인의 기억의 존재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방적인 소통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개체들을 등장시키며 상호 소통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점진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작품 변화에 따른 나의 심상도 점차 바뀌어가며 여러 변화 단계가 두드러지면서 기억의 서사화를 실현해나간다.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억의 서사화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특정 기억을 되새기며 기억을 객관화시키는 채색 과정을 시도한다.
특히 작업 과정에서 드러난 기억의 실재는 색채로 하여금 초기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는 기억의 실재를 오롯이 밝히기 위해 기억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형상을 통해 드러난 기억의 실재는 나의 특성에 의한 반복의 성격을 지녔으나, 변화의 필요성에 비롯한 새로운 숲의 형태 내지 생명체로서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한그루' 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기억의 특성을 구체화하고 그들과의 상호소통을 통한 과거와 현재, 자아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서사를 그려낸다. 과거와 현재의 동행을 통한 미래라는 불분명함을 향해 걸어나가는 용기의 단계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나의 정신적 면모의 변화들을 이미지로 온전히 재구성하는 것이 내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내가 이 서사를 통해 말하고자 함은, 작은 용기의 첫 걸음이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는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용기가 흘러가기를 바라며,
두려움에 찬 뒷걸음질 또한 용기와 변화의 시작임을 말해주고 싶다.

